쌍용자동차 투쟁이 타결되었다. 쌍용자동차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몇 명의 연행자, 부상자가 나왔는지 나는 모른다. 凡人은 밥벌이 말고 다른 일에 성실함을 보이기 어렵다. 여러 가지 시각과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이번 투쟁을 노동과 정권이 모두 패배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진행형인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코멘트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노조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은 우파로 낙인찍히기 쉬운데, 이런 식의 딱지 붙이기는 합리적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최근 진보신당 게시판에서 쌍용차 투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당원을 둘러싼 갈등은 진보진영의 근성주의를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반대자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투쟁현장에 나오지 않으면 말을 말아라. 니 말이 아무리 맞더라도 현재 싸우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예의상 할 말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영원히 대화가 불가능하다. 운동권이란 activist가 아니라 athlete인지도 모르겠다.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은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이 정치적 성과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진보진영은 몸빵과 중재 이상의 무엇을 해내지 못했다. 투쟁현장에서 정당의 접근방식이 기존의 운동단체와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당 활동가의 상당수는 이 당을 직업운동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무개 투쟁단, 혹은 언제든 차출 가능한 용병집단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정치적 해법과 대정부 압박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정당이 매일 같이 당원들에게 하달되는 투쟁지침에 몰두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창조한국당이었다. 문국현은 상용차는 유한킴벌리 모델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문국현의 주장은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정당이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방식이 어떤 유형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적어도 화끈한 대안을 제시하고 시민사회에 담론을 확산시키는 것이 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인 것이다. 이 부분은 이미 게시판에서 홍자루님과 데학생님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투쟁은 운동진영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일단 협상안 자체가 노조의 상당수 양보를 통해 이루어졌다. 운동진영은 특유의 근성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제 사회현안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방식은 진부한 관성의 연속으로 보인다. 수많은 시민들이 평택에 결합했으면, 우리는 경찰의 물리력을 돌파할 수 있었을까?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농성단에게 식수와 음식을 전달할 수 있었다면 이를 해 볼만하다. 대규모 시위가 명박산성을 넘을 수 있다면 이는 해 볼만하다. 아쉽게도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앞으로 정권의 파상공세에 어떻게 대응 할 것인가.

이명박 정권도 패배하였다. 그들은 정부에 비협조적인 노동계를 다스릴 필요가 있었고, 쌍용을 정권초기의 호재나 다름없었다. 아마도 영국 보수당 대처 수상 때의 탄광파업의 진압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경찰과 용역의 파상공세가 이어졌지만, 투쟁을 와해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정권은 시민사회를 설득시키지도 못했다. 결국 사회갈등을 해결하는데에 이 정권이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한지를 노출하고 말았다. 정권에서 조금이라도 노조와 대화할 의사가 있었다면, 이번 투쟁은 윈-윈으로 귀결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이 정권이 들어선 뒤로 정권이 시민사회와 소통하겠다는 자세를 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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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홈페이지 : http://soli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