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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제작년 2학기였을 것이다. 청운관에서 강신주 교수님의 "과학과 철학"을 수강하고 있을 때로 기억한다.

" 왜, 보통 애들이 누구 왕따 시키고 약한 애 괴롭히고 그러죠?  나보다 약하면 웬지 괴롭히고 싶어지고... 그런 거. 만만하면 괜히 건드리고. 여러분, 왕따가 단순히 특이한 문화현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그건 오히려 굉장히 일반적인 자연현상입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본능은 동물들한테 모두 있습니다. 인간도 예외랄 수 없어요. 인간과 짐승은 다른 게 없어요.

 다만 인간이 짐승과 다를 수 있는 건, 그렇게 자연상태에서는 도태되는 약한 존재, 약자와 소통하고 연대한다는 것, 혹은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걸 우리는 복지라고 하는 거고, 그건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린 애들을 교육을 해야 됩니다. 다른 애들 괴롭히지 말아라... 어려운 사람 있으면 도와줘라...이렇게 말이에요. 아이들이 순수하다고요? 순진하다고요? 그거 좋은 것 같습니까? 아니에요. 그거 굉장히 무서운 거에요. 순수하고 순진한 거의 예를 생각해봐요. 어렸을 때 곤충채집 해봤죠? 잠자리 잡아봤어요? 잠자리 잡으면 날개 가장자리는 검죠? 그럼, 애들이 그 잠자리 날개 검은부분만 찢어버리고 놔줘요. 이래도 날 수 있나 궁금하다는 호기심때문에. 그게 순수한 거에요. 그거, 엄청나게 무서운 거에요. "



#1.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노동당 경희대 학생위원회에선 "레드 페스티벌"(맞나?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이란 걸 10월 대동제 기간에 기획했다. 딴 건 다 그럭저럭 정말 "민노당 스러웠"지만, 한 가지 괜찮은 기획이라고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 있었다. 휠체어 체험 프로그램이었는데, 50m 코스를 한바퀴 휠체어로 도는데, 일반 도로와 같은 조건으로 장애물을 만들어놓고 이를 완주하면 음료수 하나 공짜로 주는 행사였다. (진보신당 학생모임이 활발한 곳이라면 학교에서 이런거나 좀 했으면 좋겠다 축제기간에. 휠체어 그거 의외로 재미있기도 하다. 한번만 타는 거라면.)

 50미터. 1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 2번인가 3번 정도는 그 당시엔 나와 같은 당적을 가진 사람(물론, 지금은 다른 당적. 이진호씨를 얘기함. 아직도 정경대 학생회실에서 서식하고 있나연?)에게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5분은 넘게 걸렸던 것 같다. 한 10분? 50미터를 가는데 말이다.

 나한테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땅에서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조금이라도 느낀 때가.




#2.

 언제부턴가 행사의 참여자가 아니라 행사의 집행자가 되어버리면서, 나는 소풍과 캠프의 재미보다는 기획과 집행의 고단함과 피곤함을 먼저 생각해버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은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오늘의 초등학교 봄소풍도 마찬가지, 휠체어를 탄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나에게 그 소풍은 그저 노동이었다. 물론 최저임금도 지급받지 못하는 합법적인 노동착취의 형태로서.

 장소는 문의마을이었다.

 나는 몇번이나 덜컹거렸다.

 전통마을이랍시고 매표소 이후엔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가 그 어느 곳에도 없었고, 계단이 아닌 오르막길의 경사도 장애인을 위한 경사라기 보다는, 그냥 산을 깎은 그런 경사. 길에 널린 "전통의 향취를 더하기 위한" 돌들은 휠체어를 몇 번이나 덜컹거리게 했으며, 몇 번은 벨트가 없었다면 넘어질 뻔도 했다.

 새로 개보수한 전통가옥들은 가관이었는데, 대문의 문지방은 너무나 높아서 휠체어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른 남자아이의 휠체어는 그래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둘러보다 다음 장소로 가곤 했다.(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그 남자아이는 평소엔 내가 케어하지만, 오늘은 어머님이 직접 돌봤다는 사실이다.)

 나도 그냥 가려다가, 고민고민하다가,  "이얍!" 하는 기합소리를 냈다.

그렇게 몇 번이나 혼자 휠체어 들고서 오르락 내리락 했다. 아 그것 참, 무겁더군. (2반 선생님이 정년퇴임을 1년 앞둔 남자 선생이라... 그냥 사진찍고 애들 챙기기 바빴지 내가 도와달란 엄두도 낼 수가 없었거든.) 전통마을에 와서 전통가옥들을 못 보면 그건 체험학습의 의미가 없으니까.

 내려갈 때 배수구의 작은 구멍들은 휠체어에 가해지는 매우 실체적인 위협이었다.

 점심은 대청댐에서 먹었다. 먹은 다음 여자화장실 옆의 장애인 화장실에 데려다 주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차에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3.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은 바로 복지다.  뭐, 복지에 대한 정의는 여러가지로 내릴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는,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란 느낌을 각 개개인에게 주는 것이다. 고립감/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

 나는 장애인도 등산을 해야한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은 모든 곳에 장애인용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그저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다.

 사실, "자연"의 상태에선 약육강식은 있을 수밖에 없다. 강함과 약함의 기준은 당연히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다. 톰슨 가젤이 치타를 잡아먹을 순 없지 않나.

 하지만 정글과 문명은 다르다. 인간의 특징은 바로 <문명>이란 것이며, 문명의 발달은 언제나 "정글의 극복"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다. 가벼운 예로, 총의 발명은 인간사회에 죽음의 평등을 가져다 주었다. 제갈량이 장비를 한큐에 죽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문명이란, 그런 것이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정글을 극복하는 것. 혹은, 정글과는 다른 것. 달라야 하는 것.

 그러니까 인간들의 사회에서 장애란 "약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다. 정글이 아니니까.

 무조건 불쌍해하지 말고, 1분의 시간에 잠시 5분의 여유와 느림을 가지면, 사실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도 않다. 혹은, 우리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연대한다면, 5분은 3분까진 줄일 수 있다. 저상버스의 확대, 낮아진 도로턱, 확대된 점자 도로판(그 지하철 가면 노란색 있잖습니까, 왜.) 같은 것들로도.  하기사, 이 땅에서 여유와 느림이란 것 만큼 쟁취하기 어려운 것도 없긴 하다.

불쌍해하면서, 그 뿐인 것. 그 또한 차별의 연장이다. 인간은 누구나 배려하고, 배려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누구도 연민과 동정을 받으려고 태어나진 않았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동등한 상황의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끼리들은 사자에게 죽어간 코끼리 새끼를 동정한다. 근데, 그 뿐이다. 연민과 동정이 없다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겠지만, 연민과 동정 뿐이라면, 역시 그 뿐이다. 그냥 짐승일 뿐이다.

 누군가가 말했듯, 인간은 정치+사회적 동물("physei politikon zoion")이다. 타자, 다른 존재와의 연대와 소통이 없다면, 인간에겐 정치와 사회는 없다. 타자와의 연대와 소통은, 곧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

 다리가 불편한 또 다른 남자아이가 갔던 화장실과, 내가 돌봤던 그 여자아이가 소변을 본 화장실은 같은 화장실이다. 그 둘이 더 이상 대청댐에서, 공공장소에서, 다른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수 있을 때, 거기서부터다. 우리가 인간의 조건에 보다 가까워지는 것. 연대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한다.

(여담이지만, 사실 장애인용 여자 화장실이 없다는 건 나에겐 언제나 수치와 분노를 제공한다. 인간으로서 수치스럽고, 화가 치민다. 너무나 찌질하지 않은가. 화장실이라니...정말, 치사빤스다.)


#4.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좀 있으면 장애인의 날이다. 그 날은, 조금이나마 사람들이 사람다워지는 날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