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발전 전략에 대한 의견


김준성(지방선거 평가와 당 발전 전략 수립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


*이 의견서는 당발특위의 요청에 따라 지난 7월 6일 제출한 것입니다.

1. 진보신당의 새 노선: 보편적 복지시스템 구축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


①진보신당의 낮은 인지도와 정당 지지율의 가장 큰 배경은 불분명한 정체성이다.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당원들도 제각각 조금씩 다르게 당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발전 전략 수립은 정체성 확립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심상정 전 대표는 당의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 정체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진보신당이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안티 민노당’, ‘안티 노무현’을 존재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진보신당에 대해 국민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진보신당이 왜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왔는지 잘 모르고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달리 무엇을 하겠다는 정치세력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탓은 아니다. 모두 진보신당이 국민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진보신당 스스로가 정체성 확립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대충 무슨 당인지 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참여당은 민주당과 비슷한 사람들이지만 친노세력이 따로 만든 당이라고 알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당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진보신당에 대한 이미지는 없다. 노회찬이나 심상정이라는 이름을 대야 겨우 알아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하자는 당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②진보신당 발전의 첫 걸음은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선을 세우고, 진보신당의 정체성은 무엇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형성될 때까지 일관되게 실천해야 한다. 당의 정치활동 기획과 지역에서의 실천에 일관되게 그 노선이 반영되어야 한다.


노회찬 대표는 ‘서민중심복지동맹’이라는 구상을 제시했지만 어디까지나 화두였다. 진보신당이 그러한 방향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민중심’이라는 생각에는 조금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그러한 방향으로 당 활동을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면 국민들에게 ‘저 사람들이 뭘 하자는 사람들이구나’ 정도는 분명히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진보신당 내부의 문제도 불분명한 정체성 문제를 낳는 요인이다. 당원들이 생각하는 당의 정체성이 다 다른데, 어떤 당원은 진보신당은 ‘반자본주의 정당’이라고 하고 어떤 당원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어떤 당원은 보다 분명한 사회주의 지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모두 그렇게 생각할만한 이유가 있는 입장이다. 그래서 모두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래서는 국민들이 보기에 알쏭달쏭하다. 진보신당의 자유주의 개혁정당의 정치실천과 다를 바 없는 각종 활동을 더 보태면 국민들은 더욱 더 아리송하다.


③무엇이 되었든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는 것이 지금 상태보다야 낫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노선이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고 시대의 과제를 가장 잘 반영한 노선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은 ‘복지당’이 되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시스템 구축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복지국가 건설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이며 국민들의 염원이다. 우리가 건설해야 하는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시스템 구축으로 가능하다. 이는 과거 민주노동당이 주장했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과 같은 맥락이다. 보편적 복지시스템을 구축해서 모든 국민이 중병에 걸려 가정경제가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아이들 사교육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주거복지도, 노동자의 권리와 생존권도, 여성의 자아실현과 권리존중도,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도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박근혜도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민주당도 복지를 말하는데 우리가 왜 그들과 같은 주장을 해야 하느냐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그들이 말하는 복지와 우리 당의 노선이 같다면 그것은 응당 환영해야 할 일이고, 그들이 말하는 복지가 평등사회를 만드는 길로서의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시스템에서 탈락한 저소득층을 달래는 수준의 차별적 복지, 시혜적 복지라면 응당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리의 주장을 하면 되는 것이다.


평등과 연대의 가치는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슬로건에 포섭되어 있다고 봤을 때 평화와 생태, 여성의 가치는 따로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다고 하위 개념으로 삼자는 말은 아니다. 국민들이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하기 쉬운 복지국가 건설 문제를 대표 브랜드로 전면에 내세우되 평화, 생태, 여성의 가치 또한 충분히 우리 당 정체성의 한 면으로 내세워야 한다. 


④새로운 노선을 전면화하기 위해 오는 9.5 전당대회에서 복지국가 건설을 당의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내년 정기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노선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강령과 당헌 전문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당의 주된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중앙당의 정치 기획도 지역 당협의 지역 활동도 새 노선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2. 당의 진로: 복지국가를 공통분모로 하는 새로운 진보연합정당 건설


①당의 진로를 고민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진보신당의 독자 생존가능성’이다. 진보신당의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면, 즉 다시 말해서 진보신당이 자기만의 힘으로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진보 정치를 할 수 있다면 연합정치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의 독자 생존가능성’은 매우 낮다.


진보신당이 두 번의 전국 선거에서 받은 지지율을 봐도 그렇고 특히, 터무니없이 허약한 물적 토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정당은 끊임없이 인재를 모으고, 재정을 튼튼하게 하고 조직을 키워야 하는 존재인데 진보신당은 세 가지 모두 부족하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선거에 나갈 공직후보 출마자가 없고, 선거를 치를 돈도 없으며, 선거운동을 뛰어줄 지역 조직이 없다. 그러다보니 일부 후보들은 선거에 나갈 때 당선은 꿈도 꾸지 않는다. 이 문제가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해야 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②2004년 총선 이후로 각종 전국 선거에서 한국의 유권자들은 일관되게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 색채의 정당에게 13%에서 17% 사이의 표를 주고 있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도 그랬다. 이 수치로 잡히는 유권자들은 어떤 정당 구도가 형성되더라도 다소 편차는 있지만 보수정당을 찍지 않고 진보정당이나 자신들이 보기에 개혁적이라고 생각하는 정당에 표를 던진다. 이런 진보파 유권자들 그리고 2008년 촛불 광장에 나섰던 국민들이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③새로운 진보연합정당 건설의 원칙은 가치와 노선, 정책의 연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당 이름을 거명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가치와 노선, 정책에 동의한다면 그 누구라도 새로운 출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 노회찬 대표는 지난 해 이미 ‘민들레연대’ 구상을 통해서 이런 원칙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의 가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바로 보편적 복지시스템 구축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이다.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이 만들어야 할 나라의 미래상을 복지국가로 상정하고 한국 사회에 맞는 실행계획을 수립해 변함없이 밀고 나가자는 합의가 진보연합정당의 건설의 전제다.


④진보신당이 작은 당이면서도 더 큰 정치세력들에게 주눅 들지 않으면서 연합정당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가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고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대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진보연합정당 건설의 주도 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진보신당은 9.5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하고 당내에 추진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차기 당 대표단을 중심으로 너무 급하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새로운 진보연합정당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


3. 2012년 전략: 의미 있는 의석 수 확보와 민주진보연립정부 수립


①2012년에는 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겨울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 앞서 제기한 문제들이 잘 풀렸을 때 우리의 목표는 국회에서의 의미 있는 의석 수 확보와 민주진보연립정부 수립이라고 생각한다.


②의미 있는 의석 수란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의석 수를 말한다. 현재로서는 20석이다. 국회 교섭단체가 되어야 국회 운영과 각종 입법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2당이 되면 좋고 1당이 되면 더 좋지만 현재로선 교섭단체 구성만 해도 쉬운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2012년 봄 국회의원 선거에서 20석 이상 당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은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해야 한다. 모든 선거구에서 한나라당과 야권이 1대1 구도로 대결하는 구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전략은 이미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 고양에서 훌륭하게 실험된 바 있는데, 놀랍게도 진보신당의 최재연 후보를 비롯해서 야권연대 후보가 모든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을 선거연합의 장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선거구에서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의 후보들이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당이 현실적인 위협을 느낄 것이다.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5+4 협상테이블에 나온 것은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후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1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던 두 후보를 그대로 두고서는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기초단체장이나 광역의원 몇 자리를 양보하려 했던 것이다.


③새로운 대표단이 구성되면 진보신당은 2012년에 반드시 국회에 들어가야 할 후보군을 선정하고 집중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 이 일은 진보연합정당의 건설 여부와 상관없이 추진해야 한다.


한정된 자원과 지역 여건을 생각했을 때 진보신당의 정예라 할 만한 후보는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부터 좋은 후보를 발굴하고 좋은 후보가 있는 지역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전략지역의 선정은 신중해야겠지만 일단 선정된 이후에는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당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다수 출마 전략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 


④2012년 대선에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은 자체 후보를 내야 한다. 우리 후보는 당선을 목적으로 선거전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진보연립정부 구성을 목표로 민주당 후보와 선거연합을 이뤄야 한다. 실현된 야권연대의 대통령 후보는 우리 후보가 될 수도 있고 민주당 후보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정치협상을 통해서든 경쟁방식을 통해서든 단일후보를 내세우고 야권연대가 승리한다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 공동 국정운영 체제를 만드는 것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이다. 다른 모든 것이 다 합의된다고 하더라도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받지 못한다면 선거연합은 있을 수 없다. 연정을 통한 국정참여도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일은 진보정당이 안정적으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제도, 국민의 의사가 올바르게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지난 영국 총선에서 유력한 3당으로 부상한 자유당이 최근 보수당과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로 연정을 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선거제도만 바꾸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