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보통, 눈치없이 10월이나 11월쯤엔 안하지만 보통 수능 100일이나 200일쯤 남았을 때 고3들이 가끔 미쳐가지고(?) 학교탐방한답시고 서울을 간다거나, 뭐 하여간 타지에 간다거나, 혹은 이미 대학에 간 선배나 아는 형, 오빠, 누나, 언니 등을 만나러 가는 때가 항상 거의 있다. 그럴 때마다 그 고3들의 "선배님들"은 인사치레로 이런 말을 한다.

 

 "우리 학교 와요~ㅋㅋㅋ 꼭 우리 학교 와야 돼?ㅎ"

 

  나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도 괜찮아 보이는(말이 통할 것 같은)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야 우리학교 와~ 새내기의 봄은 한번 뿐이야.ㅋㅋㅋㅋ 밥 사줄께~ 잘해줄텡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이런 따위의 말들.

 

 그래, 나도 그러고 다니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4수한다던 부산의 어느 아는 동생한테 그렇게 말해버린 것 같았다.

 

#1.

  정미경의, <소년은 울지 않는다>를 보고서 이것저것 생각이 들었다. 참, 나도 그러지 않았나. 물론, 우리 집은 그렇게 잘 사는 형편이 못 됐고 또 그런 형편에 비례해서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다른 집에 비해 심하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반면, 나에겐 인터넷이 문제였다. 나는 인터넷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결국 그것은 나에게 지워진 계급적 조건들(지방 대도시의 교외지역의 안 좋은 학군에 속해 있는 노가다 혹은 영세 자영업자를 부모로 둔 학생)과는 그닥 맞지 않는 꿈을 꾸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나와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의 최고 출세(?) 레벨은 기껏해야 충남대/충북대였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건 일치감치 신탄진 전매청에 살면서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탄방동으로 아이들을 위장전입시킨 담배인삼공사란 공기업에 다니는 부모들의 자식이었을 것이다.(물론 그들 중에서도 인서울은 극히 드물었지만. 그리고 너무나 당연히, 이게 위장전입이라는 건 그 당시엔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다. 다만, 얘는 왜 우리집에서 걸어가는 곳에 집에 있는데, 왜 학교는 둔산 신도시로 간다는 걸까? 불쌍하다. 란 생각은 했었겠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외고에 다니는 애들을 알아버렸고, 너무나 자신있게 스카이가 목표라고 하면서, 모의고사점수조차도 납득이 가는 점수를 맞는 애들을 알아버렸으며, 서울의 ㅅ대 다니는 사람을 비롯해, 더구나, 오, 이런 세상에, 인서울 대학교의 운동권들 마저 알아버렸다. 젠장할. 


 재수를 비롯한 여타의 학습노동이 과연 나의 계급적 조건을 뛰어넘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보다는, 누군가가 내게 말했듯(원래 성격이 그런 애니까, 사실 a를 a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애한테 그게 상처였다라고 뒤늦게 말해봤자 소용없어서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걔는, 그런 애니까.) 나는 일종의 주류컴플렉스에 강력하게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다. 물론, 앞 문장이 과거형이라고 해서 컴플렉스가 과거형인 건 아니다. 애정결핍, 혹은 내현적 자기애라고 뒤늦게 판단하는데, 나는 내가 그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놀고 싶었다. 같이 놀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재수시절 같이 놀때마다 중간중간, 잊을만 하면 나오는 말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EBS에 처음 출연하러 갔을 때 서울대 문화인류학과 02학번이라면서 삭발한 어떤 형의 진심을 담은(?) 얘기였다. "꼭 우리 학교 와야 되요?!"


  "야 임마 재수정도 했으니 우리 학교 와야지~"  심지어는(물론 이건 반은 진담이고 반은 농담이었겠지만), 나의 회기동 라이프가 시작되었음에도 "야야 그냥 우리 학교 와 공익할때 수능 잘 치면 됨 ㅋ_ㅋ" 이런 얘기들.


 뭐, 내가 저 말을 들은 사람의 대부분은 정말로 함께 하고 싶어서 얘기를 한 것이지, 뭐 딱히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


 그래서 나도 어느새 "우리 학교 오면 내가 잘해줄게 ㅋㅋㅋ" 란 소리를 하게 되고.


#2.


 이 소설을 읽고 그냥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결코 지금 외고를 다니고 있는, 혹은 지금 상위권인 고등학생에게 "우리 학교 와 ㅋㅋㅋㅋ"라고 이야기 하지 못한다. 아, 수능을 망치면 그렇게 얘기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우리 학교 와~"라는 문장은, 몇가지 변수에 의해 그 얘기를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후배로 추정되는 애의 예상 점수와 몇몇의 배치표가 만들어준 대략적인 권력관계가 그것이다. 그리고 보통은, 그 학교에 올까 말까 간당간당한 애 20%와 죽었다 깨나도 합격여부가 불투명한 80%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된다.


 그건,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아니면 권력의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3.


 누구나 전자라고 생각하고, 얘기할 것이겠지만.


#4.


 하지만 나는 외고에 다니는 어떤 아이, 연세대에 아는 사람이 많은 그 아이에게, 우리 학교 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나와 친밀한 서울대생과 함께 있을 때 어느 고등학생과 함께 있을 때, 결코 그 내 옆의 서울대생이 "우리 학교 와~"라고 말했을 때 똑같은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5.


 비권 총학생회가 등록금 투쟁은 안하고 지금 생각하면 별 쓰잘데기 없는 서명운동을 받던 때가 있었다. "회기역을 경희대역으로!~" 서명운동이었다. 내가 거기에 서명한 것은, 정말로 "고려대역이나 한양대역처럼 그 지역의 중심/상징이 될만한 장소를 역이름으로 하는게 이름모를 지역 이름으로 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내가 내건 표면적인 이유가 맞았을까? 정경대만큼 많이 돌아다닌 붉은 광장과, 청운관식당보다 밥값이 싼 미네르바홀 식당이 있던 그 우리 옆 학교 이름이 회기역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왜 우린 회기역일까 란 생각이 정말 눈꼽만치도 없었을까?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사실은, 그때도 자신 없었다. 그거갖고 외대 생도에 있던 친구와 이거 관련해서 의견다툼을 한적이 있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철이 없었다.


 나는 다군에 외대, 나군에 시립대를 썼다는 어떤 후배한테 걍 우리학교 와~ 내가 잘해줄께~ 야 경중시외라니깐~.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물론 경중시외는 지금도 내가 곧 잘 장난으로 하는 말이긴 하지만(-_-;) 그게 같은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의 입장에선 어떻게 들렸을까? 그 소년은 과연 울지 않았을까. 그 소년은 3군데 모두 떨어졌다.


#6.


 그러니까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그러니까 난 그 운동권들을 어처구니없게도 알아버림으로서 고등학교때부터 민노당원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진보신당인데, 나는 언제나 대학평준화와 학벌없는 사회를 외쳤단 말이지. 근데 사실은 나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계급적 조건의 역전 혹은 대물림, 그리고 상위 학벌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정말로 노골적으로 인식을 해서 이것만을 위하여 공부에 그렇게 열을 올리고, 올렸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미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태초에 민족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것의 혈연/역사적 허구성과는 무관하게, 일정한 민족공동체라는 관념(이라기 보단 관계가 적절할 것 같다.), 그 움직이기 참으로 어려운 관계가 결국 탄생했고, 존재하게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학벌이라는 조건과는 별개로 우리 모두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괴로워하고, 달아나는 것보다도 버티는 게 어려운 이러한 과정을 당연한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결국 존재하게 되고 만 것은 아닐까.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사이의 그 관계의 권력구도. 그리고 이건 단순히 <대학평준화로 이걸 깨야 한다.>라고만 말하기엔, 관계의 권력틀 안에 존재하는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있다. 분명히. 수혜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심지어 대학평준화를 이야기하는 나조차도, 가끔씩은, 정말 가끔씩은, 어쩔 수 없이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긴다. 그것이 비록 이유없는 것은 아니라고는 하나(대학이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들.) 그런 태도는 중고등학생과 부모, 주변인들에게 무한증식되겠지. 이성이 따라가줄 수 없는 관계의 그물에 걸린 어쩔 수 없는 나의 마음. 내가 비정상인걸까?


 한남대 다니는, 혹은 충남대 다니는 누나나 형을 둔 어떤 애에게 우리 학교 오라고 한 적도 없진 않은 것 같다. 물론 그 소년은 수치같은 걸 느끼거나 하기 보단, 웬지 나에게 아우라 같은 걸 느꼈겠지. 물론 내 곁의 많은 서연고서성한 을 보면 순식간에 내 뒤에서 사라져버릴 바로 그 것. 형제자매에겐 무의식적으로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과연. 미안하고, 두려워진다.


 제어할 수 없는 '탁월하고 맹목적인' 괴물들. 세상은 점점 괴물들의 차지가 되어가고, 나 또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조차도 너무나 탁월하고 맹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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