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봉 - 공허한 희망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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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로 출마하고, 진보신당 정책연구소인 미래상상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봉 교수가 시민사회에게 정당운동에 힘을 보탤 것을 충고하고 나섰다. 박원순, 백낙청, 남윤인순 등을 주축으로 진보개혁시민단체 및 학계와 종교계 인사 100여명은 ‘희망과 대안’ 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과거의 낙천낙선 운동 식의 네거티브한 방식의 선거 개입 대신  내년 지방선거부터 선거연합이나 좋은 후보 추천 및 지원을 나서겠다고 밝혔는데 김상봉은 이를 정당운동 밖에서의 오만한 '훈수'로 규정하고, 무력한 시민운동과 달리 실제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인 정당운동에 직접 참여를 주문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시민운동이 정당운동에 비해 과잉 발달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모양새 또한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순수시민운동'에 머물른 결과 진보진영이 폭 넓은 사회계층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민사회 운동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래서 시민운동 보다는 정당이 더 강해지는 '새로운 정당 운동'이 필요하다는 김상봉의 생각에 동의한다. 민주화 이후에 "가능하다면 훌륭한 시민운동가들과 학자들이 진보정당에 많이 참여해 진보정치의 길을 넓혀 나갔어야만 했다"는 진단에도 역시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운동과 정당이 하나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 운동과 정당은 각각의 역할이 있으며, 각자가 각자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연합을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작정 시민사회 운동 진영은 지금의 사회를 바꿀 수 없으며, 진보정당 운동 속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야 말로 오히려 주제넘은 오만한 '훈수'가 아닌가 싶다.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시민사회 운동이 통째로 기존의 정당과 통합되어버린 나라의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시민사회 운동 진영이 정당과 여러가지 방식으로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정상호의 <시민사회운동과 정당의 관계 및 유형에 관한 연구> (2004)에 따르면 각 나라의 제도와 정치, 사회 세력의 역학관계에 따라 시민사회운동의 정당과의 관계 하에서의 대응은 독자정당 모델, 정책 연대 모델, 대안적 운동-정당 모델, 비정치 모델 등으로 갈라진다. 독자정당 모델은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이고, 정치동맹이 가능한 서유럽의 녹색당의 경우가 있고, 대안적 운동 모델은 민주화 운동 등을 통해 체제전환이 있었던 신생국가들에서, 정책 연대 모델은 단순다수제이지만, 정당과 사회운동과의 연계가 제도적, 문화적으로 이루어진 미국, 영국, 프랑스의 경우는 정책 연대 모델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단순다수제를 택하고 있고, 정당과 시민사회운동고의 연대를 가능하게 할 신뢰도, 경험도 부재한 한국의 경우가 비정치 모델에 해당한다.

정당체제가 경화되고 있는 현 한국의 상황에서 시민운동은 과거와 같이 비정치 모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동맹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한 이익에 대한 호혜적 기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진영과 정당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거나, 시민사회 진영의 도움을 확실히 받을 진보진영이 시민사회 진영에 줄 선물이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국가에 대항하는 시민사회의 역사가 있는 한국의 시민들은 관변단체적 성격을 띤 보수 시민단체와 달리 진보적 시민단체에게 '정치적 순수성' 을 기대한다. 시민사회 단체들이 자신들의 무기인 '정치적 순수성'을 잃고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 더 나아가 확대할 수 있을 만한 확실한 전망이 없다면 정당들과의 직접적인 연계는 맺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운동 진영을 순수히 '공익'만 담보하는 행위자로만 파악한다면, 공익을 위해서 정당과 연계하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역시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신들의  조직을 지키고 확대해야 하는 조직 행위자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현재의 상황에서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좋은 후보를 추천하고, 선거연합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 최적의 전략이다. 물론 이들의 과거로 미루어 볼 떄 민주당 편향의 개입의 우려가 있으나, 이에 대한 비판은 진보세력들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조정자 역할의 정당성에 대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반 조건들을 따져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시민사회 운동 진영을 윽박지른다고 과연 무슨 좋은 결과가 나올까 싶다. 오히려 물적조건들을 떠나 일방적으로 공익을 위해 정당운동에 참여하라는 김상봉 교수의 주장이야 말로 공허한 희망과 대안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물적 조건 이외에도 정당과 시민사회가 연대하지 못한 이유로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경직된 '순결주의'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진보정당들의 '순결주의'도 한 몫을 했다고 본다. 진보정당은 과연 얼마나 개방적인가. 진보정당은 자신들의 지배적 이념과 정향에서 배치되는 이들에게 얼마나 포용력있게 다가갔는가, 아니 다가오는 다른 이들에게 관용적이기라도 했는가. 당원들과 당권자들간의 이념적 괴리에 대한 인식은 있는가? 운동권 사투리는 얼마나 고쳤는가? 운동권 사투리를 지위재로 생각하고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했던 자신들과 다른 당원들을 구별짓는 행위에 열심이지는 않았는가? 여성과 청년 등 소외된 계층들을 위한다면서 도대체 그들을 끌어들일 만한 기획을 벌인 일이 있는가? 기존의 것들의 답습과 결론없는 회의들만 지속되고 정작 한 일은 별로 없는 것 아닌가?

진보정당의 입구가 얼마나 좁은지는 70% 가량의 비율을 차지하는 4월 총선 이후 가입한 진보신당 당원들(소위 지못미, 촛불 당원)이 지금 현재 얼마나 진보신당에서 얼만큼 활동하고 있는지를 보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물론 그으으으윽히 드물다. 당 안에서도 힘든 일이 당 밖에서는 과연 얼마나 잘 될까 싶다. 먼저 진보정당의 입구를 좀 넓혀야 시민들도 오고 시민사회도 들어 올 수 있을 것이다. 남을 꾸짖기 전에 진보정당 부터 포용력있는 자세를 보이며 스스로 변했으면 한다. 그렇지 않고서 계몽주의적 태도로 남들을 꾸짖어봤자, 얻을 건 스스로의 도덕성에 대한 공허한 자족이요, 잃을 건 실질적 지지와 연대다.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진보정당이 앞장서서 열린자세로 건설적인 연대의 방법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때다. 그래야 논의의 주도권을 쥘 수 있고, 연대가 실패할 시에도 명분을 챙길 수 있다. 아니면 시민사회운동 진영에 끌려다니거나, 독야청청하면서 현실의 참패에는 눈 감는 아큐식 정신승리를 되풀이하는 수 밖에 없다.

진보정당, 아큐로 남을 것인가, 진짜 승리를 할 것인가. 선택은 언제나 쉬운 것과 어려운 것 사이의 선택이다. 부디 이번에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진보정당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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