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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규정은 매우 뛰어난 정치학자에게 있어서도 힘든 일이며, 특정한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개념 규정을 단순히 개개인들의 선택에 맡겨 버린다면 그 실천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규정은 출발부터 여러 개의 답의 존재를 전제함에도 불구하고, 개념의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쉐보르스키의 개념규정을 응용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나름의 규정을 시도해보자면 '대표성과 책임성을 핵심으로 하는,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 한 선거 경쟁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체제' 정도로 정의를 내려 볼 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규정은 특정 부분에서 오류가 있거나 전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의해야 할 점은 '정치철학' 에 기반하여 '정치체제' 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규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규정이 중요한 이유는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며, 또한 윤리학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정치철학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면 문제를 진단하는 데에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이는 실천의 효용성 문제로 이어진다. 물론 현실에서 양자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려우며 실제로 양자는 섞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정확히 일치시키는 것은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가치로서의 민주주의는 각자의 개념규정이 다르겠지만 대부분 강한 평등주의를 내포하는 일련의 성향을 의미할 것이며,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주기적인 선거와 보통투표권, 반대의 자유화를 핵심으로 하는 역사적 정치체제를 의미할 것이다. 양 개념의 관계는 후자를 통해 전자를 관철시키거나, 전자를 반영하여 후자를 확립하는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양 개념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는다면 양 개념 사이의 관계 역시 설정할 수 없으며(관계는 두개의 주체 이상이 존재할 때 성립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각자는 자신의 민주주의 개념을 민주주의의 전부로 알고 폐쇄적 동어반복만을 외치게 될 것이다. 즉,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려를 결여한 채 '민주적 가치' 만을 추구한다면 자족적인 소규모 공동체로의 침잠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며 민주적 가치에 대한 추구를 결여한 채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형식적인 투표와 무기력한 유권자를 양산하는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민주적' 이라는 것과 '민주주의' 를 명확히 구분하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개념의 과잉으로 인한 혼란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이 부분은 뒤에서 서술하는 부분과 명확히 분리하기가 어렵다). 이는 일상적 파시즘론으로 인한 파시즘에 대한 개념과잉과도 연관이 있다. 부정적 가치를 지니는 일상적 파시즘의 반대항목이자 추구해야 할 긍정적 가치로서 일상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소환됨에 따라 민주주의 역시 개념과잉의 늪에 빠져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는 운동진영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모든 희망과 부정적 가치의 안티테제들을 집약시키는 기표로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체제로서의 민주주의가 모두 강한 평등주의적 지향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평등주의 자체를 민주주의로 환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의 역사적 갈등과 타협을 통하여 만들어진 체제인 만큼 더욱 평등주의로 환원할 수 없으며, 자유주의를 거세한 평등주의적 지향이 현실체제로서 나타났을 때는 강한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기에 환원되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결과의 위험성은 차치하더라도, 무리하게 주조된 형이상학적 개념을 현실에 모사하려 하였을때 나타나는 실천적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의 개념을 정치철학에서 윤리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 역시 경계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민주주의에 대한 운동론적 이해나 롤즈와 같은 자유주의 일각의 이해는 정치철학을 거세하며, 현실에 필수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봉합할 수 없는 갈등이 상존하는 정치적인 영역을 거세함으로써 해로운 효과를 낳게 된다. 즉, 서로 상충하는 윤리적 지향들의 상호 공존 가능한 갈등을 부정하고 하나의 윤리적 지향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상정한다면 민주주의는 모순적인 인민의 의사를 그대로 대의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해석할 수 없는 일반의지에 복무하는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비약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대의 민주주의를 근대성의 한계로 지적하며 직접 민주주의 혹은 급진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논자들의 상당수가 오히려 모순을 존재 그대로 포용하지 못하는 지극히 근대적인 이분법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인데,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이념이지 특정한 윤리적 지향점을 가지는 도덕철학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즉, 정치철학으로서의 민주주의는 윤리학적 이분법으로 환원할 수 없는 특수한 지점을 가지기에 다른 영역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적' 이라고 부르는 평등주의적 지향과 인민주권을 주장하는 정치철학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미시적 실천을 거시적 체제변환과 직결시키는 오류로 이어진다. 민주주의의 과제는 이론상의 인민주권을 어떻게 실제 정치과정에서 구현할 수 있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에게 평등한 자세를 취하는 도덕주의적 자세를 가지는 것으로 치환되며,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정치적 실천이 아니라 사상개조와 일상적 태도수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인민주권의 원칙과는 거리가 있는, 오히려 정치와 덕을 연결시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유사한 면이 많은데다가 현실적으로 특정한 정치적 변화를 낳기도 어렵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앞에서 지적하였다시피 특정한 윤리적 실천을 주문하는 민주주의의 개념은 인민이 윤리적 삶을 원하지 않을 시에도 '민주' 의 이름으로 인민에게 교화를 강제하는 도덕국가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자코뱅의 공포정치가 급진적 민주주의의 이념을 내세웠던 루소의 이론에 의해 정당화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면, 또한 소외로부터의 해방을 주창한 공산당이 어떻게 스탈린의 폭정으로 이어졌는지를 상기해본다면 윤리적 지향점 자체를 민주주의로 환원하는 것의 오류와 위험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민주적'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며 현실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하지만, 양자를 일치시킬 수는 없으며, 더욱 중요한 점은 현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의 원리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정치학자 보비오의 지적대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전제될때만이 존재할 수 있는데, 민주주의라 하여 인민들의 위험한 편견-타자에 대한 폭력적 배제-까지 그대로 정치에 반영하는 것은 국가에 의한 강제적 교화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적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정치철학으로서의 민주주의의 개념이 포괄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그것의 부족함을 자유주의를 통해 보완하여 현실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 정체(政體)를 구성하는 것이지, 민주주의라는 단일한 기표 내에 모든 가치를 포괄시키려 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적절히 지적하다시피 사회의 전 영역이 '민주적' 으로 운영될 수는 없기에 민주주의를 특정한 윤리적 지향점을 향한 실천으로 이해하는 운동론적 이해나, 민주주의에 사적 인간관계의 평등까지 포괄시키는 최대주의적 이해는 실제 현실에서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개념적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보완하는 다른 이념과의 조화를 추구해야지 민주주의라는 단일한 이념하에 현실을 조직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요컨대 인민주권의 실현을 추구하는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다양한 이념들과의 역사적 투쟁과 균형의 결과로 형성된 현실 민주주의 체제는 개념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으며, 가치로서의 민주주의 역시 특정한 윤리적 내용을 포괄하는 실천의 원리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후자의 서술이 다소 불분명하기에 구체적으로 부연을 하자면, 가치로서의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의 실현이라는 한도 내에서 규정되어야지 그 이상의 특수한 지향점을 가져서는 안되며-예컨대 '사회주의 평등사회 건설' 이 민주주의의 가치로 치환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양자를 혼동한다면 북한이 스스로를 민주공화국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 운동 자체가 민주주의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현실 민주주의를 혼동하게 되면 현실 민주주의를 개량하려는 시도보다는 천년왕국을 지상에서 실현시키려는 대책없는 급진주의가 횡행하게 되며, 윤리학과 정치철학으로서의 민주주의를 혼동하게 되면 '일상에서부터의 민주주의 실천' 을 강조하는 의미없는 소규모 공동체주의나 인민에게 특정한 윤리관을 가질것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발판을 닦게 되기에 양자는 충분히 경계되어 마땅할 것이다. 첫 문단에서 제시한 민주주의에 대한 나름의 정의-대표성과 책임성을 핵심으로 하는,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 한 선거 경쟁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체제-는 인민주권이라는 이상과 다원성을 존중하는 자유주의의 원리를 현실 민주주의라는 용광로 속에서 포괄해보기 위한 최소한의 미약한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는 열정을 수반하지 않기에 다소 밋밋해보일지 모르겠으나, 열정의 동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상생활들로 구성된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바꾸어나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추가적인 노력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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