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게시판
현재 당의 대의원 선출 방식과 관련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과정에 대해 폭넓은 당원 전반의 참여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정종권 위원장님과 회사원님의 글들을 보았고 여러 당원 분들의 글을 보았는데, 추첨제라는 낯선 제도가 제안된 것과 일각에서 일인다표제를 주장하는 논거의 방식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스러운 경향이 엿보여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우선 일인다표제에 대해서는 기술적인 판단을 유보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말하겠습니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투표보다 추첨을 더 '민주적' 인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그것은 고대 아테네 시민사회가 고도로 동질적인 집단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추첨제와 일인다표제를 주장하는 분들의 취지는 결국 '평당원' 으로 대변되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방법들이 '평당원' 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의문입니다. 직업 등의 모든 요소가 분화된 현대사회에서 추첨이라는 방식으로 다양한 당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의제화 시킬 가능성은 확률에 기대는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당은 일종의 작은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일반의지' 를 직접 접촉하게 하려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둔 선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평당원의 참여를 주장하시는 분들의 상당수는 평당원을 동일한 질을 지닌 '일반의지' 로 상정하고 평당원의 선출여부를 강조하시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시민사회와 국가 사이에는 그 폭주를 막기 위해 직업 정치인으로 대변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사회는 노련한 국가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추첨에 의한 대의원 선출은 그들의 대표성과 책임성 여부를 떠나 역설적으로 '평당원' 의 이익을 배반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좋은 정치란 인민 스스로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죠), 인민들에게 좋은 대안을 제시하고 본질적인 균열들을 반영하여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단순히 '평당원' 이 대의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의원들이 어떻게 하면 평당원들의 다양한 관심사들을 포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통일된 정체성을 가진 조직이 아닌 다양한 집단을 포괄하고 있는 정당으로서는 각 집단들의 균열을 가장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균열의 반영은 마냥 당사자들을 바로 정당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킨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컨대 요행에 기댄 목소리들을 바로 힘으로 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힘들이 목소리들에 의해 통제받는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당 내부의 정파들끼리 민주적인 경쟁과 균열을 둘러싼 동원을 통해서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지 '추첨' 이라는 신의 주사위 굴리기로 소수자들을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자가 중요시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균열축이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들의 목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러한 주장들이 반복되는 것은 당내에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적인 이해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사료됩니다. 민주주의는 당위 이전에 현실이며, 따라서 기존의 신화적인 운동적 정치관에서 탈피하여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서 책임있는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실험' 혹은 '소수자' 등의 당위를 내세워 정치를 실험장으로 사용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당이 엄숙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험과 상상력만을 중요시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의견이 어떻든 많은 당원들이 이번 문제에 대해 많은 목소리를 내며 문제의 본질을 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1
 
105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