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의 조선공산당 비판한 조봉암 “6·25 죄과 저지른 북한” 정강에 명시

[중앙일보] 입력 2011.01.21 20:01 / 수정 2011.01.22 01:21

‘간첩죄 무죄’ 선고를 보고 - 역사학자 이덕일씨 기고

죽산(竹山) 조봉암의 무죄선고 소식을 듣는 순간 백호(白湖) 윤휴(尹鑴)가 생각났다. 주자학 유일사상 사회에서 주희(朱熹)와 달리 경전을 해석하고 양명학도 용인했던 윤휴는 숙종 6년(1680) “나라에서 어찌 유학자를 죽인다는 말인가?”라며 사형당했다. 죽산이 조선 양명학의 본고장인 강화에서 태어난 것이 그래서 심상치 않다. 스물한 살 때 강화에서 3·1운동에 적극 가담했다가 1년간 투옥된 조봉암은 ‘나의 정치백서’(『신태양』 1957년 5월호, 별책부록)에서 “감옥살이하는 동안 전연 딴사람이 되었다”고 말한 대로 독립운동에 생애를 걸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엿장수를 하면서 중앙대학 정치과에 적을 두는데 이때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를 접하고 사회주의자의 길을 걷게 된다.

조봉암이 1946년 5월 한성일보에 ‘존경하는 박헌영 동무에게’를 써서 박헌영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의외였다. 조봉암은 ‘내가 걸어온 길’(『희망』 1957년 2∼4월호)에서 “공청(共靑: 고려공산청년회) 조직 책임은 그 전년에 출옥해서 당시 동아일보에 근무하던 박헌영(朴憲永)에게 맡겼다”고 할 정도로 오랜 동지였기 때문이다. 1925년 결성된 조선공산당(조공) 중앙검사위원이기도 했던 조봉암은 코민테른 극동국 위원으로 상해에서 활동했다. 이때 김금옥 여사와 첫딸을 낳자 상해의 옛 지명인 호강(扈江)을 따 호정(扈晶)이라고 이름 짓기도 하는데 1932년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는다. 신의주 형무소에서 “떨다 지쳐 잠자다 얼어 죽으면 궤짝 속에 넣어 파묻는 것이고 살아남으면 징역살이를 되풀이하는 것뿐”이라고 회상할 정도로 혹독한 감옥살이였다.

서울 망우동 공원묘지에 있는 조봉암의 묘. 묘석 앞면에 ‘죽산조봉암선생지묘’라고만 쓰여 있을 뿐, 그의 삶을 알려줄 행장(行狀)은 새겨져 있지 않다. 20일 대법원 판결 후 조 선생의 맏딸 조호정(83) 여사는 “50년간 비워둔 아버지의 비문을 이제 써넣겠다”고 말했다.
 이런 경력의 조봉암은 재건 조공의 중심인물로 나설 만했으나 인천으로 내려가 인천 민주주의 민족전선 의장을 역임하고 박헌영과 조공을 비판했다가 조공에서 제명당한다. ‘나의 정치백서’에서 조봉암은 “한국 민족을 버리고 한국 독립은 불고하고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생각한 일이 없다”고 조공이 소련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데 대한 반발이라고 설명했다. 죽산의 정치행보 중 또 의외는 1948년 제헌선거에 인천 을구에서 입후보해 당선된 것이다. 좌익은 물론 김구의 한독당까지 단독선거를 보이콧한 와중이었기에 그의 참여하의 진보정치는 돋보인다.

72명의 무소속 구락부의 추천과 이승만의 권유 등으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초대정부의 농림부 장관이 된 조봉암은 식민잔재와 반봉건적 유제를 일소하는 농촌근대화를 목표로 삼았다. 정부가 양곡을 매입해 중간상의 폭리를 배제한 양곡매입법(糧穀買入法)이나 농지개혁법안은 한민당의 맹렬한 반대를 받지만 나중에 모두 현실화되었다는 점에서 혜안이 돋보인다. 재선된 조봉암은 국회부의장에 선출되고, 1956년의 대통령 선거에 진보당추진위원회의 후보로 출마한다. ‘나의 정치백서’에서 조봉암은 “투표일 며칠 앞두고 우리 당 후보의 입후보를 취소하고 야당연합적인 투표를 하게…(해공 신익희와) 합의를 보아 두었다”고 전하는데 해공의 급서로 무산되었다. 조봉암은 216만 표, 신익희는 추모표 185만 표를 얻었고 이승만은 504만 표를 얻어 당선되었지만 부정선거라는 논란이 잇따랐다.

진보당은 통일정책 정강에서 ‘6·25의 죄과를 범한 북한의 반성과 책임규명은 평화통일의 선행조건이 아닐 수 없다’라고 명시했지만 당수 조봉암은 간첩죄와 국가변란죄로 사형당했다.

 
대법원은 무죄판결 후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진보당의 통일정책 정강도 ‘우리의 평화적 통일방안이 대한민국을 부인, 말살하는 데 있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육성하고 혁신하고 진실로 민주화하는 데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봉암은 ‘나의 정치백서’에서 “진보당이 걸어갈 길은 뚜렷합니다. 공산독재도 자본주의 독재도 다 같이 거부하고 인류의 새 이상인 진보주의의 진리를 파악하고 만인이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 살 수 있는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가 화두인 지금 사형 2년 전에 한 그의 말이 새삼 예언 같다.

이덕일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