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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10.08.19 02:51

[정치] 뉴라이트는 그게 아니라니까


2010. 08. 24. 화요일

케비케이

 

 

말복이 한참 지난 요즘, 하루만 개수대 앞에 음식물을 두어도 푹~~ 썩어버리는 요즘, 한달이 훌쩍 지난 떡밥을 자신있게 물어버리는 내가 참 불쌍하기도 하다. 하지만 푹 쉬었어도 ‘뉴라이트 너네 정체가 뭐니?(링크)’라는 떡밥은 물만하다고 본다.

 

또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바로 쓰고 싶은 욕구를 느꼈으나, 글을 빨리 쓰지 못하는 내 능력의 한계도 이제야 쉰 떡밥을 물 수밖에 없게 만든 한 요인이기도 하다.

 

덧붙여 요즘 정불이 시끄러운 큰 이유와 상관없는 글을 올림으로써, 오히려 정상적인 정불 게시판의 운영에 도움이 될 거라는 미력한 기대 역시 이 글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8월 12일 훨훨카카님이 요구하신 내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올리기도 한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영패주의와 지역감정으로 떠들썩한 정치불패이지만(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지방선거 직후 6월 말에는, 영패주의와 지역감정이 정불의 최대 화두였다. --;;; 아~~~ 옛날이어.), 모든 정치불패의 딴지스들이 거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꺼란 기대에서 우선 글을 올린다. 글을 올리는 목적은 ‘뉴라이트, 너네 정체가 뭐니?’라는 좋은 기사에 일말의 똥싸다만 거 같은 안타까움이 생겨서이다, 그러니 이 글은 그 기사의 첨부파일 정도로 읽어주면 좋겠다.

 

 

1. 문제제기

 

문제를 한마디로 제기하자면, 그 기사를 읽고서도 뉴라이트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기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뉴라이트가 ‘뉴라이트’라는 그 이름과 달리 ‘식민지근대화론’이나, ‘군부독재경제발전론’ 같은 친일사대수구꼴통 같은 소리를 하는 집단이라는 것은 알겠다. 한데 더 근본적인 이유, ‘도대체 왜 그들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며,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소위 신보수라고 칭하고 다닐 수 있냐.’는 것에 대해선 기사를 통해 알 길이 없다. 미친놈 보고 ‘미친놈’하고 욕하면 끝날 것 같지만, 그 미친놈이 정기적으로 출몰해서 정신을 산란하게 만든다면 도대체 저놈이 왜 그러는지는 알아봐야하지 않을까?

 

이 부분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기사에서도 지적되었듯, 뉴라이트의 핵심이론가로 거론된 안병직과 이영훈이라는 존재다. 사실 뉴라이트와 비슷한 집단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부터 여러 가지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새마을운동 같은 관제단체부터 어버이연합 같은 요상한 시민단체 등의 형태로도 존재하고, 좀 오버해서 보자면 일제시대의 왜곡된 실력양성론을 바탕으로 친일과 자치론사이에서 줄타기하던 여러 단체들까지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단체별, 시기별로 강도와 방향성의 차이는 있지만 단순히 정리해보면, ‘군부독재(일제)는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근대화를 가져왔다.’, ‘미개한 다른 신생지역(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비교하자면, 우리의 근대화 성공은 기적에 가까우며, 이것은 민족의식과 민주화를 내세우던 세력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아픈 과거사를 무조건 들춰내서 상처만 만들지 말고, 공과를 인정해서(그렇게 말하지만 공만 인정해달라고 하면서)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덮어두자.’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뉴라이트는 ‘일제시대가 꼭 우리민족에게 피해만 준 것은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명제까지 제기한다.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뉴라이트의 핵심이론가로 지적된 안병직과 이영훈과 같은 지식인이 존재한다. 그들은 학문적으로 접근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연구는 뉴라이트의 주장을 밑밭침해 줄 다양한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드는 궁금한 점은, 서울대 교수직을 역임하며, 이미 이 사회의 메인스트림의 살고 있는 그들이, 왜 일제시대의 경험이 한국의 근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친일파 같은 소리’를 하며, 군부독재시절이 한국 경제발전에 긍정적이었다는, 군부독재옹호론 같은 소리를 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도대체 왜 뉴라이트 같은 단체가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지를 보여줄수 있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바탕에는 일반인들의 상식을 어이없게 뛰어넘는 학계의 흐름과 거기에 따른 주류의 지원이 있고, 이것들이 그들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필자는

 

(1) 뉴라이트의 정확한 핵심인 식민지근대화론은 무엇인지 밝히고,

 

(2) 일반상식에서 벗어난 식민지근대화론의 학계 영향력과 일반성에 대해 말할 것이다.

 

(3) 또한 그것을 반박학기에 열악한 우리 학계의 현실에 대하여도 말하며 볼까한다.

 

 

2. 뉴라이트의 핵심을 찾아서 - 식민지근대화 이론과 낙성대학파

 


앞의 문제제기에서 대략 설명한 것과 같이, 필자는 뉴라이트의 핵심이 ‘일제시대의 경험이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과 이것을 입증하기위해 다양한 연구결과들을 쌓아가고 있는 안병직, 이영훈의 소위 ‘낙성대학파’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뉴라이트의 핵심으로 지적하는 점이다. 하지만 역시나 소변 덜 보고 잠자리에 누웠다가 잠이 스르륵 들 때쯤 화장실이 가고 싶어 다시 갈까말까하는 일말의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 단락에서는 ‘낙성대학파’와 그들이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왜 뉴라이트의 핵심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아울러 뉴라이트의 도발적인 주장들이 왜 핵심이 아닌지도 살펴보자.

 

 

1) 낙성대학파와 식민지근대화론

 

모든 조직에는 앞에서 나서서 시끄럽게 굴며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전위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묵묵히 따르며 조직의 몸통을 이루는 부분도 있을 것이며, 이러한 조직의 방향성과 비전을 제시하는 수뇌도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에 대해 이런 잣대를 들이대자면,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신지호나, 지난 대선 쥐박이를 대놓고 지지하던 김진홍 목사 같은 이들이 전위를, 뉴라이트 학부모연합, 뉴라이트 기업인연합, 뉴라이트 학생연합 등등 수많은 각 분야 뉴라이트 모임들과 회원들이 몸통을, 그리고 낙성대학파가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수뇌를 맞고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낙성대학파는 단순히 뉴라이트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뉴라이트 탄생 이전, 한국 경제학계에 수량경제학과 그것을 이용한 경제사학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출발한 경제학술적 분파이다.(필자는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므로 이쪽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 경제학 전문 딴지스들의 많은 추가논의는 무조건 환영한다.)

 

그러나 낙성대학파의 핵심멤버라 할 수 있는 안병직, 이영훈의 활동을 보면, 그들은 단순히 경제학적인 학술차원의 활동만하는 것이 아니어 보인다. 일제시대의 한반도 경제발전을 논하기 위한 논문들은 제외하더라도,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등 대중을 위해 집필한 그들의 서적은 뉴라이트 활동의 목적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의 대중서적은 뉴라이트 활동의 논리적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낙성대학파는 사실상 뉴라이트의 수뇌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들의 활동은 뉴라이트 그룹내 이견을 조율하고, 활동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 수많은 뉴라이트 명칭을 단 단체들이 활동 중이고, 그중에는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는 자중지란의 어이없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전위나 대중조직 간의 이견과 상관없이, 확고부동한 뉴라이트의 수뇌들은 상한 앞다리가 떨어지면 다시 복구하는 나메트성인 같은 복구력을 보이며 그룹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낙성대학파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변이 바로 ‘식민지근대화론’이다. ‘무슨 철지난 근대화이론을 들먹이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식민지 드립이냐!’하고 허탈과 분노를 느낄지 모르겠지만, 낙성대학파의 주된 주장이 그것이고, 그리고 생각 외로 ‘식민지근대화논쟁’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식민지근대화론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말그대로 제국주의 시절 미개한 지역의 식민지 경험이 해방 후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피식민 경험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선뜻 와 닫는 말은 아니지만, 45년 이후 다양한 신생국가들의 발전과정과, 식민지시절 모국에 의해 쌓이기 시작된 초기 근대통계들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지면서 점차 확산되어간 이론이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의 특별한 성장 경험은 일본과 서구학자들에 의해 재포장되면서 일제에 의한 식민경험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발전 요인이다라는 식의 주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낙성대경제연구소(http://www.naksung.re.kr)의 연구자료들을 보면 조선말기와 일제시대의 사료를 수량적 데이터로 정리하여 농업생산량의 증가, 인구이동, 물자조달체계 등을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전통사료를 현대에 맞게 계량화해야하고, 적절하게 변환하여 사용해야한다. 더불어 총독부를 통해 처음 작성되기 시작한 근대식 통계자료들은 연구가 용이하지만, 전통적 사료에 기록된 부정확한 데이터들은 가공단계에서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연구자의 양심과 정밀하기 위한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지만, 이런 식의 연구에 따르면 당연히 일제 식민지 시절 우리는 조선시대보다 훨씬 발전했다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즉 낙성대학파는 객관적이고, 새롭다는 연구 방법(수량통계)을 통해 식민지근대화이론이 실체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민족감정이나, 일방적인 일제에 대한 비난을 벗겨낸 일제시대를 정확하게 볼 새로운 연구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 도발적이지만 핵심은 아닌 이야기들

 

본격적으로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다른 뉴라이트들의 도발적 주장들이 왜 핵심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ⅰ) “김구는 테러리스트다”

 

지난 딴지 기사에서도 언급되었던 문구로, 김구로 대표되는 무력투쟁독립운동그룹에 대한 객관적 접근을 빙자한 물타기 주장이다. 이 문장은 문장자체로 노이즈마케팅효과를 내면서 사람들에게 뉴라이트라는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다. 일종의 낚시성 선전문구로, 이걸 보고 길길이 날뛰는 민족주의자들은 뉴라이트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 의문을 갖고 “얘들이 뭔소리야?”하며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뉴라이트가 이 문장으로 낚으려는 이들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감정적인 거부감과 달리 이러한 주장이 꽤 논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문장을 가지고 너무 길게 말할 수는 없지만, 핵심은 김구선생의 무장독립활동이 일제에게 테러를 한 것이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는 진리명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어떠한 정치철학계에서도 테러와 전쟁(게릴라, 파르티잔 포함)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민간인의 피해를 가지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전쟁은 테러 이상으로 많은 민간인의 피해를 만들고 있다.

 

실제 9.11 이후 알카에다, 아프간, 이라크에 대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테러와 전쟁에 대한 극심한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아직 그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은 불가능하다. - 여기서 이걸 가지고 길게 이야기 할 수 없으니, 기회가 되면 이 이야기는 따로 해보기로 하자. 다만 거기에 대한 몇 가지 사례만 들자면, 테러용의자들을 교도소에 수감해야 하는지, 군포로수용소에 가둬야 하는지 문제가 발생했고, 아브그레이브 사건은 그 논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테러용의자들의 재판을 군법정에서 해야하는지, 연방법원에서 해야하는지의 문제, 테러용의자 검거를 군이 해야하는지, 경찰이 해야하는지 등등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상한 선언 덕분에 실제로 꽤 심각한 개념혼란과 일의 차질이 발생했다.

 

즉 이러한 테러와 전쟁의 불분명한 개념을 생각해보자면, 객관적으로 김구선생과 무장독립세력들의 수많은 요인암살형식 무장투쟁이 테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즉 그것이 테러인지 전쟁인지는 주장하는 이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완벽하게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가지고 무관심한 이들의 관심을 환기한다면, 뉴라이트로서는 대성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뉴라이트의 핵심주장이 될 수는 없다. 이 주장을 확대하면 조선의 무력독립운동은 괜히 쓸데없이 사람들을 죽이기나 한 의미없는 테러행위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독립운동은 별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건 일본 극우파도 아니고 한국에서 보수 세력으로 자리를 잡으려는 뉴라이트에게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 줄 명제가 못 된다. 이러한 주장을 하며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의미의 정치 집단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김구는 테러리스트다.’라는 주장은 뉴라이트가 꼭 하고 싶은 주장이라기 보다는, 듣보잡들의 노이즈마케팅이자, 향후 주장할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ⅱ) 좌편향된 역사교육을 바로 잡아야한다?

 

‘김구는 테러리스트이다’라는 그들의 주장에서도 볼 수 있듯, 뉴라이트는 대한민국 역사를 새로 쓰고 싶어하는 욕구에 불타올라 보인다. 실제 이영훈이 뉴라이트활동을 선언한 후 한 본격적인 활동들의 대다수가 역사관련 대중서적 집필이었다. 실제로 이영훈에 대해 검색을 해보면 경제학자라는 전공분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주로 역사에 대한 책들을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시간만 나면 뉴라이트들이 ‘좌편향된 역사교육을 바로 잡아야한다.’는 둥, ‘교과서편찬위원에 좌편향인사가 있다.’둥 하며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는 것을 보면 이들이 교과서 고치는데 올인을 하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그들의 핵심은 아니다. 그들이 일본의 극우파처럼, 교과서 개정을 통한 역사적 정당성 확보만이 소망인 사람들도 아니고, 더욱이 그걸로 얻어지는 것이 논란의 크기와 비용에 비해 특별한 수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이 역사학자들도 아니지 않은가. 뉴라이트들이 현 역사학계를 다 뒤집어엎고, 자기들의 본업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건 아니지 않겠나. 결과적으로 이것도 일제와 군부독재에 대한 거부감 제거 정도의 사전 작업이나, 한국의 왜곡된 보수세력의 결집을 위한 구실 정도에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뉴라이트의 핵심은 아니라 볼 수 있다.

 

단 이영훈 개인으로 보면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의 개량적 방법을 통한 식민지 경제사 연구는 사실 그동안 철저하게 역사학계로부터 무시당해왔다. 그러다 낙성대학파의 연구결과가 쌓이고, 그들의 경제사학 연구를 통해 조선말기와 일제시대에 대한 수량데이터가 쌓여가면서, 현재는 식민지사 연구에 한 부분을 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영훈 개인의 입지나, 낙성대학파의 역사연구의 영향력 확대에는 분명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젠장~~~ 쓰다보니 너무 너절하다.

 

간단하고 명확하게 글을 쓰는 것이 진짜배기 글쟁이라는데, 난 글쟁이는 아닌갑다.

 

지금까지의 글을 요약하자면

 

1. 뉴라이트가 왜 친일사대수구꼴통같은 소리와 활동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이 글을 쓴다.

 

2. 뉴라이트가 왜 그러는지를 알려면 껍덕을 배껴서 뼈와 살을 발라 핵심은 뭐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지를 봐야겠다.

 

3. 그래서 본 뉴라이트의 핵심은 안병직과 이영훈의 낙성대학파이고 그들의 핵심주장은 '식민지근대화론'이다.

 

4. '김구 테러리스트 드립'이나 '역사교과서 좌빨 드립'은 시끄러운 것에 비해 그들의 핵심주장은 아니다.

 

이 정도가 되겠다.

 

3. 식민지근대화론의 국제적 보편성과 학계에서의 위상

 

앞의 논의를 통해 식민지근대화론이 낙성대학파와 뉴라이트의 핵심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럼 이쯤해서 ‘대한민국에서 보수하겠다는 놈들이 왜놈 뒷꽁무니나 빨고 있어!!’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대체 어느 나라 보수가 조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에게 고맙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도대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정말 정말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그동안 다른 나라의 보수라고 이놈들과 비교했던 곳들이 어떤 나라들인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선진국가나 우리만 만만히 보는 일본이나, 중국 같은 나라들 아닌가? 근데 이 나라들의 국제적, 역사적 위상이 우리와 같을까? 말 빙빙 돌려해서 미안한데, 바로 말하자면 우리가 보수의 모범이라고 뉴라이트들에게 제시하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제국주의시절,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아니라, 제국이었던 나라이거나, 중국같이 특수한 위상을 가진 나라들이다.

 

이 부분은 내 전공과 가까운 분야라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데, 미안하지만 국제적으로 볼 때 우리가 쉽게 거론하는 그 나라들은 국제정치적으로 우리와 같은 위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 밖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특히 연구자들은) 우리를 그저 45년 이후 탄생한 신생국가로만 본다. 그들이 볼 때는 South Korea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콩고와 케냐, 가나와 비교대상일 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보수, 베네주엘라의 보수, 필리핀의 보수가 어떤지 혹시 알고 있나? 이걸 자세히 들어가면 비교정치학이 되는데, 대한민국을 포함한, 지금 거론한 이들 45년둥이 신생국가들의 근대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식민경험’이다.

 

국제적으로 1945년, 2차 대전의 종결은 수많은 신생국가의 탄생계기였다. 사실, 승리한 연합국은 패배한 추축국들의 식민지를 모두 해방시켜 줄 생각도 없었고, 그것이 가능하리라 보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이해도 있지만, 아직 근대화가 덜 된 수많은 식민지들이 정상적인 국가를 세울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일차적인 판단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UN의 신탁통치이사회였다.

 

우리 현대사에도 이름을 올린 이 신탁통치의 망령은, 1945년 당시 세계의 지성이 식민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탁통치 이사회가 기능을 정지한 것은 1994년의 일이다.

 

1918년, 미국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선언을 통해, 이후 각 민족들이 현대적 국가 설립의 근거가 국제적으로 마련되었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이건 완벽하게 사실도 아니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

 

 

 

 

최근에는 이 신탁통치의 개념이 불량국가(rouge state), 실패국가(failed state)에 대한 국제적 개입(intervention) 필요성으로 변환되어 가는 중이다. 소말리아, 이라크와 아프간에 미군과 UN군이 개입의 당위성을 여기서 찾는 것이다.

 

앗~~ 아는 척 하느라 넘 멀리 왔다^^;;;; 암턴, 우리를 비롯한 이들 신생국가들의 국가성립과 발전과정에 식민경험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국제적으로 상식으로 통하는 상황이다. 국제정치학, 비교정치학, 발전경제학, 제도주의학파 등등 여러 학계와 학파에서 진행되어 온 신생국가 연구에는 식민모국의 영향력이란 것이 당연하게 바탕으로 깔려 있다는 말이다.

 

- 훨훨카카님께: 장하준이 식민지 경험을 긍정적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제도주의학자라는 점에서 식민경험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제도주의자들은 제도의 영향력이 그 어떤 것보다 크다고 보는데, 우리의 그 근대적 제도란 것들이 대부분 일제와 미국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장하준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뒤에 설명할 우리 경제발전기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는 관료체제란 제도가 일제에 의한 식민경험에 의해 탄생 된 것이라고 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하준의 논의 역시 바탕에 식민지근대화론을 바탕에 깔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러한 국제 학계의 일반적 상황에서 우리의 민족감정 따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발전은 일제시대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라는 내용의 주장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면 ‘이놈 봐라 우끼는 짬뽕이네. 그게 연구냐!’ 하는 반응만 받을 것이다. 아니, 아예 국제적 학술지에 등재가 어려울 것이다.(물론 그걸 완벽하게 증명하는 매우 체계적인 논문이라면 다르겠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민족주의 계열에서 그런 일을 하기는 역량에 벅차다.) 

 

사실, 대한민국은 국제 학계에서 그리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 경제성장과 민주화 두 가지를 다 이룬 나라, 올림픽, 월드컵에 우리 가카가 사랑하는 G20정상회의 유치 등등 웬만한 국제적 이벤트는 다 해본 나라이다.

 

또 한강의 기적을 일군 나라, 동북아 균형자가 될 나라(개인적으로 노짱을 좋아했지만, 동북아균형자론 나올 때는 정말 얼굴이 화끈 거렸다.--;;;) 등등, 우리는 우리를 국제적으로 꽤 대단하게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일 뿐이다.

 

얼마 전 서경덕 씨가 무릎팍에 나와서 ‘한국은 일본 말 쓰지 않아요?’하는 서양사람 말에 충격을 먹고 한국 홍보 일을 시작했다는데, 학계에서는 북한관련 안보연구를 제외하면(이것도 최근 미국에서나 먹히는 분야), 그보다 더 볍신 취급을 받는다.

 

이런 한국에 대해 원석에 투자하는 마음으로 연구를 하는 한국전문가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셀리그 해리슨(Selig Harridon) 같은 외교안보 전문가나, 린다 와이즈(Linda Weiss) 같은 정치경제학자도 있지만,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로 한국인 아내를 두고 있는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를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 브루스 커밍스와 우 커밍스라는 한국인 아내는, 스승 제자 관계였다 결혼했고, 재혼커플이었다. 그러므로 매우 육두적 스토리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커플로 딴지와 코드가 맞을 것으로 추측된다. ^^;;;;

 

그런데 그런 브루스 커밍스가 쓴 동북아시아와 한국 경제발제에 관한 논문을 보면 ‘일제의 식민통치가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특출 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 말하고 있다.(Cumings, 1984) 다른 연구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발전에는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강한 국가(strong state)와 일사분란하고 유능한(비웃음이 날 수 있지만) 관료체제(smart state)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관료체제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관료체제를 모방한 것으로 일본 식민지 경험이 이들 나라들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있다. - 이게 내 진짜 전공으로 소위 동아시아발전국가론(Developmental state)이다. 국제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국가들의 기적 같은 발전을 설명하는 가장 유용한 틀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도 담에 기회가 됨 함 썰을 풀자. ^^;;;

 

답답하지만 현실이 이렇다. 우리는 국제적으로 우리를 학술적으로 설명할 때 일제시대의 경험을 부정적으로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세계의 학자들은 한국의 발전에 일제시대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치고 팔짝 뛰겠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우리와 같은 국제적 위상의 국가들을 쉽게 그렇게 보고 말한다. ‘인도사람들은 영국 식민지였어서 영어가 자연스러워 좋겠네.’, ‘리비아의 그 뭐시깽이나, 쿠바 그 늙은이는 왜 자꾸 미국한테 대드는 거야?’, ‘카카, 차베스가 까불더니 회의장에서 스페인 국왕한테 한방 먹었다며!’, ‘아~ 흑형들의 나라는 대부분 북두신권에, 원피스의 세상인거 가터, 이거 미군이라도 출동해서 질서를 바로 잡아야하는 거 아녀?’ 식의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시절의 편협한 문명화, 근대화 이론은 이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국제적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4. 시궁창 같은 국제현실에서 우리 학계의 현황과 주류의 접붙기

 

앞 단락을 통해 우리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국제적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런 국제 학계의 현실에서 한국의 학자들은 다른 나라에 우리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이게 왜 중요하냐고?? 대학도 연구도 국제경쟁력이 있어야한다며! 국제경쟁력이 뭐 별거야 개들한테 관심 끌 연구를 하란 거잖아.(앗, 학교 때려칠 때를 생각하니까 쫌 열 받아서 흥분했다. 휴-----;;;)

 

한국의 정치학계, 경제학계에서 국제적 연구에 본격적으로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80년대 후반 이후다. 이런 변화의 바탕에는 80년대 초반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유학생들이 대부분 이 즈음 귀국하여 바로 교수채용으로 채용되었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사실 80년대 이전에는 유학을 가는 사람도 드물었고,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여기서 자리를 잡는 사람도 드물었다. 유학 갔다가 정치적인 이유나, 개인적인 이유로 거기에 정착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보다는 워낙 미국이든 유럽이든 유학 가는 사람자체가 드물었다.

 


 

딴지일보 게시판에도 많이 계시는 386(이제 486, 586이신)초반 세대들부터 미국 위주로 유학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이 공부하고 돌아온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에는 미국유학만 다녀오면 교수채용이 당연시 되는 시기였다. 거기다 기명사미시절 대학자율화로 인해 전국에 대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그 많은 80년대 90년대의 유학생들을 대부분 교수로 취직시켜주었다.

 

지금은 어떨 거 같은가. 대한민국에 어느 4년제 대학의 학과를 찍어도(국문과, 사학과, 한문학과 제외) 유학파 교수가 절반 이상은 된다에 너불편짱에게 꽂을 면봉 한 다스 건다.(내가 교수 될 가능성이 0%라는 걸 다시 확인해서, 넘 흥분했다 --;;;;)

 

암턴, 이런 대학국제경쟁력, 유학파 교수 이야기를 한 것은,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우리 대한민국을 설명할 우리만의 이론체계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거 말을 이렇게 하니까 무슨 주체사상을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그런 게 아니라, 국제경쟁력 강조, 유학파 교수만 살아남는 더러운 세상(이제는 유학갔다와도 T.O가 없어서 교수되기 힘들다.)에서 주류 이론을 좇아야지, 어디 무슨 우리만의 독창적인 뭔 지랄을 할 수가 있겠냐.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현재 한국의 정치학계와 경제학계는 미국에서 배워 온 최신이론을 한국현실에 대입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수정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수준이다. 결국 이러한 학문체계에서 국제적으로 공인 받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선택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골성의 문제는 있겠지만, 정치적 담론 싸움이 아닌, 실증연구로 가자면 대다수의 연구가 식민지근대화론을 깔고 있다.

 

그러던 중 안병직과 이영훈은 일본에서 돈 받아 연수 다녀오고 연구비 지원을 받아 연구를 해보니까, 식민지근대화론이란 것이, ‘이게 완전 틀린 말은 아니네.’ -> ‘학술적으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네.’ -> ‘어랏, 어거 완전 숑킹인데, 거기다가 무주공산!! 오키 내 평생을 여기에 건다.’ 이럴 수 있다는 것이다.(생각해보니 안병직, 이영훈은 유학을 안 갔네.^^;;)

 

이렇게 나온 학술적 논거들은 그동안 힘은 있지만 부끄럽기만 했던 우리의 그 알량한 주류들에게 아주 똥꼬를 할타주는 쾌감을 선사한 것이다. 더 이상 손주 새끼에게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니 할아버지가 부끄러웠어요. 흑흑흑~~”이나, “니가 재벌이면 다냐, 친일파 후손 주제에!!”라며 덤벼드는 돈 없고 힘없는 놈들의 쓸데없는 자존심과 객기에 놀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은 386들이 대학시절 그렇게 많이 읽었다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나,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맑시즘> 같은 대안적 이론들과 그 연구들을 우리학계에서 볼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 세 가지 이론들은 우리 사회에선 그 자체로의 학문적 유효성이 끝난 것들이다. 그러니 내말이 지금에 와서 이걸 다시 복구하자는 말이 아니다. 저 이론들이 대유행을 했던 80년대 그 이후에도 꾸준히 저 연구들이 계속되어 왔다면, 또 새롭고 창의적인 한국만의 이론이 나왔다면, 지금 우리사회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이야기하는 뉴라이트의 꼴을 무조건 봐야하면서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이다.

 

 

5. 결론과 대안

 

아, 후~~~ 읽기도 힘들었지? 난 쓰느라 죽을 맛이었다. ^^;;;; 그래도 여까지 왔으니 끝은 봐야지.

 

필자를 대학원까지 보낸 울 아버지가 필자랑 술 한 잔 마시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니 말은 이론이고, 현실은 달라.”, “니가 사회생활을 더 해 봐야 돼.”이다. 그럼 나는 속으로 ‘비싼 돈 들여 대학원까지 보내더니, 우째 내 말은 듣기 싫으실까?’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왜 우리아버지는 내 이야기가 듣기 싫을까? 그리고 정말 이론이랑 현실은 다른가? 또 이론은 사회에서 배우는 것보다 못한 것일까?

 

이론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리고 우리가 사실이라고 보는 현실들은 이론에 의해 재포장 되고 왜곡되기도 한다. 또한 이론은 현실을 보는 안경이다. 그런데 그 안경에는 색깔이 입혀져 있다. 그리고 그 색안경의 이론으로 세상을 보면 모두 그 색이 입혀진 체로만 보인다. 뉴라이트, 낙성대학파, 식민지근대화론, 한국에 대한 국제적 시각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뉴라이트가 열심히 떠들 수 있는 배경에는 낙성대학파와 주류학계의 식민지근대화 이론이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고, 그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주류의 지원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더욱 공고해진다. 그리고 뉴라이트는 우리들에게 계속 상식에서 벗어난 소리를 해대지만,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주장에도 학술적 근거가 있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고, 그때는 우리가 지금처럼 뉴라이트를 미친놈으로만 몰아붙이고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만이나, 동남아시아 국가,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보면 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제발 공부 좀 하자. 웬 공부드립이냐고? 거대담론과 명분을 좋아하는 386횽아들, 대학 졸업 후 몇 권의 책을 읽으셨나 좀 세어보자. 업무상 필요한 기술서적이나, 재테크 같은 실용서 말고, 인문사회과학서적이나 교양에 도움이 될 책을 한 50권은 읽으셨나?........... 화내지 마시라 ^^.

 


근데 사실 이 공부드립은 딴지스들 같은 일반인들보다는 학계에 투신한 젊은 학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확하게 주문을 하자면 제발 ‘다양하게’ 공부 좀 하자는 것이다. 미국식 주류이론이나, 유학가서 배워왔던 이론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여러분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관심이 많았던, 민중, 사회개혁, 남북문제(한반도 말고, 세계의 남북), 제3세계 국가들 등등에 대해서 관심 좀 갖고 연구 좀 하자. 왜 다들 그나마 한다는 공부가 미국과 글로벌 스탠더드, 자유화, 세계화, FTA, ODA 등등만 인가. 쫌 돈 안 되고, 힘들어도 독창적으로 자신 있게, 독고다이일찌라도, 다양한 문제에 대해 연구 좀 하자.

 

그리고 이제 정말 딴지스들과 일반 분들에게 중요한 대안을 말씀드리자면, 그런 다양한 연구에 제발 관심 좀 부탁드린다. 뉴라이트 욕하면서, 맨날 뭔 사회문제만 터지만, 수요와 공급, 시장경제주의적 시각, 권력투쟁, 정치공학만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뉴라이트를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뿐이다.

 

그래 맞다. 그런 익숙한 이론들이 더 명쾌하고 올바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안 해봤나?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정치교양서적으로 읽을 수 있을 만한 책 중에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생각을 우리에게 던져 주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매스컴과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한 가지 ‘프레임’에 빠지면, 결국 어떤 반론은 해도 그 프레임을 만든 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매스컴과 정치인도 그럴진데, 말과 글을 칼처럼 쓰는 학계라는 곳은 얼마나 더 심하겠나. 당신이 경제학과를 나왔다고 주류경제학적 시각만 갖고 있다면, 프라푸치노를 이기기는 무척 힘들다.

 

하지만 프레임을 뒤집어 버리면 어떨까? 정말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합리적이고, 시장의 가격은 수요 공급에 의해 결정되나? 자유시장을 추구한다는 미국이라는 국가는 시장에서 심판 역할만 하나? 민간시장에 정말 개입 안 하나? 이런 주류경제학의 틀에서 당연한 것 같은 질문들은, 다른 이론의 색안경만 끼어도 틈이 숭숭 보인다. 하다못해 같은 경제학의 제도주의 개론서만 읽어도 다른 반론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결국, 여러분들이 다양한 시각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주류가 판을 치다 못해 뉴라이트라는 똥을 싸 뭉개는 이 시궁창 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연구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리고 학계가 주류 편향인 데에는 이 돈의 위력이 매우 크다. 더구나 자기 돈 들여 연구를 아무리 해도 누가 인용도 하지 않고,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연구는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에게 연구기금을 마련해달라, 펀드를 조성해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뭐 관심 있는 진보연구소들에 후원금을 내 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가능 하신 분들만 하자. 그저 여러분이 다양한 시각에 대해 관심을 유지만 해준다면, 당연히 그 사람들의 연구가 사회적 쓸모가 생기고, 인용되고 회자되다보면, 대안적이고 한국에 꼭 맞는 새롭고 독창적인 이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안그래도 오늘 뉴스를 보니까, 외교안보분야(여긴 학계에서도 완전 꼴통들의 주 서식지다.)에 그나마 진보적 논의를 한다는 '세종연구소'를 KDI에 합치겠단다. --;;; 젠장할 놈들.

 

그래도 모르겠다고!! 그럼 마지막으로 예를 들고 끝내자. 386 횽아들이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어본 개념 중에 민중이란 것이 있을 것이다. 한 때 이 민중 개념은 민중사학 같은 인문사회분야뿐만 아니라, 민중미술, 민중음악 등 예술까지 포함한 학계 전반에 대 유행이 된 적이 있다. 이건 386 횽아들의 삼촌들, 즉 4.19세대부터, 박통시절 졸라 투쟁하던 그들이 학계에 들어가 만든 새로운 학문 조류였다. 그리고 그걸 386 횽아들이 열심히 읽어주고 떠들어 주면서 민중연구가 매우 광범위하게 퍼졌다.

 

그런데 지금은 학계에서 민중은 사라진 담론이다. 누구도 민중을 가지고 연구하고 분석하지 않는다. 물론 가끔 극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정치사회연구소의 페이퍼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학계는 물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페이퍼를 봐도 정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배추도사와 무도사가 말싸움하는 것 같은 촌스런 담론투쟁만하고 있다. 이미 사회과학연구라는 것은 실증적 데이터가 양념으로라도 들어가야 하는 시대가 됐는데, 이렇게 담론투쟁식 자기주장만 늘어놓은 논문을 쓰면 실어줄 학술지도, 관심 갖는 이도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 담론이 유행이 지나서? 시대가 다른 걸 요구하기 때문에? 아니다. 그 연구가 80년대에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시절 연구를 끝으로 학계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의 민중 논의가 지속되었다면, IMF때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발전된 민중 논의가 유럽식 공동체 논의와 결합되었다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 인식이 일찍부터 널리 퍼졌을 수 있다.

 

민중만 특별한 경우냐고? 아니다. 곳곳에 이런 주류는 관심 없고, 아니 오히려 껄끄러워하지만, 정말 연구되어야할 우리 사회의 주제, 담론들은 수두룩하다.

 

인터넷과 정치의 만남이 정말 의미 있는 결과를 세계최초로 만든 곳이 대한민국이란 걸 알고 있나? 맞다, 바로 노짱과 우리가 만든 기적이 그것이다. 한데 그 사건이 일어날 당시 대한민국에는 그 현상을 설명할 이론이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세계 최초인데. 그러다가 2004년 미국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미민주당 경선에 하워드 딘이 비슷한 열풍을 일으키자, 이후 미국에서 이걸 설명하기 위한 논쟁이 벌어지고, 이론들이 나온다. 그러고 나니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국의 정치외교학과에 ‘정보화와 정치’, ‘사이버정치’, ‘인터넷정치’ 같은 과목들이 우후죽순으로 개설된다. 씁쓸하지 않나?

 

 


이외에도 386들이 학교를 다닐 때 최고 인기 과목이었다는 ‘제 3세계 정치’는, 필자가 학교 다닐 때에는 폐강을 겨우 면하고 있었고, 2008년을 떠들썩하게 했던 ‘집단지성’ 논쟁은 학계에서 당시 사르륵 피었다가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서 데이터 수집 및 통계 작성을 이영훈과 낙성대학파만 하고 있나. 그 방대한 역사자료들을 우리 사학계가 나서서 현대화하고 재해석하면 안 될까?

 

그러려면 여러분들의 관심이 매우, 아주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화~~~~ 길고도 긴 글 드뎌 끝냈다.

 

그간 이걸 쓰지 못해 똥사다만 것 같은 찝찔함을 느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시원하다.

 

다만, 글재주가 뛰어나지 못해, 눈에 쏙쏙 들어오게 쓰지 못한 것은 아쉽기만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식민지근대화이론은 낙성학파만 주장하거나,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범 세계적인 일종의 메타이론에 가깝다.

 

2. 이 식민지근대화이론은 한국을 포함한, 1945년 이후 독립한 구식민지 신생독립국가들을 서구학계가 바라볼 때 기본적인 전재로 깔린다.

 

3. 국제적으로 한국은 1945년 이후 탄생한 신생국가로, 학계에서 그렇게 매력적이거나 특별한 위치의 국가가 아니다.

 

4. 당연히 한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도 드물지만, 브루스 커밍스처럼 한국 전문가라 국제적으로 이름난 사람들은 당연히 한국의 발전에 일제의 식민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5. 그리고 그런 주장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을 국제학계에서 볼 때, 당연시 되는 주장이다.

 

6. 이런 국제학계의 환경에서 우리 학계는 주류 주장을 안 따라갈 이유가 없다.

 

7. 우리학계에서 진행하는 대부분의 연구는, 담론투쟁이 아닌 이상 거의 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

 

8. 낙성대학파는 그런 주장을 아예 노골적으로 하는 것으로, 이런 주장은 돈과 권력은 있지만, 사회적 명분이 없는 우리의 알량한 주류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이다. 

 

9. 이런 환경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도 한데, 자체적인 학문 발전에는 신경쓰지 않고, 외국에서 공부한 연구자들을 특별 취급하는 문화가 크게 작용했다.  

 

10. 80년대 유행했던 민중 개념이나 박현채의 논의, 맑시즘은 주류입장에는 매우 껄끄러운 것으로 다시는 보지 않기를 바랬는데, 우리 스스로가 그걸 충족 시켜줬다.

 

11. 대안은 다양한 학문을 하는 연구자들이 나타나야하고, 거기에 딴지스들을 포함한 일반인들이 매우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어야 한다.

 

12. 안 그러면 머지않아 낙성대학파와 점점 늘어나는 학계의 추종자들이 내놓은 논거들을 통해 뉴라이트가 대놓고 떵떵거리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요약이라고 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다보니 요약도 넘 길게 됐다.^^;;;

 

암턴 우리 뉴라이트를 좀 더 생각해보고 세상 좀 바꿔보자!!

 

p.s 1 : 이 글을 쓴 나는 한국 어디 구석탱이의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았을 뿐이다. 당연히 글의 내용이 진리도 안니고, 군데군데 부족한 부분도 많다. 많이 딴지 걸어주시라. 격하게도 좋다.  

 

p.s 2 : 훨훨카카님 읽어보시고 맘에 드심, 이제 술사주세요~~~~